#326(11/21/20) “기대”

covidvaccines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월요일마다 보조로 일하면서 도서관 직원인 모라(Maura) 이런 저런 이야기를 가끔 나누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대면수업을 점차적으로 진행하면서 학교 리더십에 있는 리더들의 고충을 나누었습니다. 페어펙스카운티 공립학교에서 최근 장애학생과 저학년을 시작으로 대면 수업을 리더십에서 결정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말이 많습니다. 학부모들은 학교 대면 수업을 원하는 분들이 있고, 교사들은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학부모들은 온라인 수업에 자녀들이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유이고, 교사들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 환경이 되기 전까지는 대면 수업은 미뤄져야 된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학교 리더십에 있는 사람은 정말 힘들겠다고 모라와 공감을 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좋은 소리를 들을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학부모 분의 자녀 이야기를 들을 있었습니다. 아직 초등학생인 자녀가 있는데 학교에서 메일을 최근에 받았다고 합니다. 온라인 수업하는 화면과 음성을 모두 꺼두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혼내줬다고 합니다. 부모로서는 학교에 보내자니 건강이 걱정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자니 집중이 안되서 학습효과가 떨어져 걱정입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학교 리더십도 고생이고, 학부모들도 고생입니다. 참으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운 시기를 모두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어려움을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기고 있습니다. COVID-19 백신 개발에 대한 소식이 연이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자에 이어 모더나도 세번 테스트에서 94.5% 효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스트라제네카도 노년층에 좋은 효과를 거두는 백신 개발이 임박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이자는 테스트 최종결과는 95% 효과가 있다는 소식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년이 걸려서 만들어지는 백신이 빨리 만들어져서 나올 있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합니다. 이에 대해 현재 전염병관련 수장을 맡고 있는 파우치 박사는 예전에 비해 의학 기술이 발달했고, 필요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골라 백신을 만들 있는 유전자 기술의 발달로 가능하다고 방송에 나와 말했습니다. 그리고 명에 이르는 테스트에서 90%이상의 효과를 것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다’, , 어떤 사람들은 귀신의 힘을 가지고 고치는 이라며 의견이 갈렸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만드시고 가장 아시는 예수님이 사람을 고치는 것은 그리 어려웠을까 생각해 봅니다. 의학지식이 많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단지, 전염병 대책의 수장의 말을 듣고 기대해 봅니다. 학교 리더십에 있는 사람들의 고생과 온라인 수업으로 고생하는 학부모의 시름이 빨리 놓이기를 기대해 뿐입니다.

#325(11/14/20)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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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회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3번째 단계까지 테스트 했는데 90퍼센트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는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루 확진자가 십만명을 넘기는 기록까지 세우고 있습니다. 급기야 몇몇 주에서는 다시 락다운(lock down), 스테이엣홈(stay-at-home), 그리고 통금을 다시 실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좋아져도 백신 개발이 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줄기 소망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소망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소망의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입니다. 진노를 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레미야 애가 3:40-54절까지 내용을 보면 예레미야는 남유다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서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할 민족의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자신의 민족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돌아가자 외칩니다(40). ‘돌아가자 외침은 유다 백성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불순종, 타락, 우상 숭배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돌아가되 여호와께로돌아가자고 분명히 외칩니다.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분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을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예레미야는 끝없이 전했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단추는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는 것임을 말합니다(40). 솔직히 자신을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조사를 받으면 누구도 깨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도 죄악을 변호할 없습니다. 이미 죄로 인해 사형 언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6:23: 9:27). 그래서 검은 죄로 뒤덮여 있는 자신을 제대로 사람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아간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놀라운 구원의 길이 우리의 참된 소망입니다. 자의 가정, 직장, 교회에서 어떤 못할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지라도, 또는 어떤 잘못과 실수를 했을 지라도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가면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은 놀라운 소망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어떤 시대 못지 않게 힘든 상황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참된 소망 필요한 시대입니다. 영적으로 점점 타락해 가는 시대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이 모든 사람에게 참된 소망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예레미야 애가 3: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324(11/07/20) “따뜻한 온기, 신선한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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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침부터 수정이 운전연습에 나섰습니다.  센터빌을 돌아서 29 길을 따라 매나사스로 돌아오는 길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29번을 타고 오다가 매나사스 파크에 잠시 주차를 하고 트레일을 걸을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주차장엔 최근에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주차장이 빈틈없이 차서 주차할 곳이 없었습니다. 간신히 찾은 곳에 주차를 하고 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족 단위로 트레일에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종종 걸음으로 가는 작은 강아지, 몸이 무거워 다리를 끌며 가는 뚱뚱한 강아지,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주인한테 끌려가는 강아지들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지난 주까지는 비가 오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다가 이번 주엔 날씨가 70도를 웃도는 화창한 날씨의 연속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답답한 집에만 있다가 트인 야외로 나와 따뜻하고 신선한 날씨를 즐기러 주말에 나온 합니다.

비즈니스 하는 분들의 말을 들어 보아도 오는 날보다 햇볕이 쨍쨍한 날이 장사가 된다고 합니다. 좋은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다 보니 장사가 된다는 것이지요. , 사람들이 무언가에 끌리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따뜻한 온기와 신선한 공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온기와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이라면 사람들이 시간을 내고 비용을 들여서라도 찾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적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교회로 사람들이 오게 하는 것입니다. 때도 필요한 것이 영적으로 따뜻한 온기와 신선한 공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서고, 그들에게 활력을 주는 말과 행동으로 신선한 매력을 주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 준다면 그들의 발걸음이 의미있는 공동체로 발걸음을 옮길 있다는 생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위에서 사역하실 많은 군중들에게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먹이고 가르치셨고, 특히 가르침은 권위가 있었고, 위로와 소망을 주었으며 신선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습니다. 당선된 대통령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많은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와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어 주는 리더가 되기를 기도 드립니다.

(살후2:16-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23(10/31/20) “예수를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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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은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하게 중구남방으로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은 책의 제목과 일관되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구성해 책도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책은 목차만 보아도 내용이 파악이 됩니다. 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감지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일관된 성경의 내용을 발견할 있습니다. 성경의 맥이라고도 있겠죠. 물론 성경은 오실 예수님 오신 예수님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 대해서 책이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불순종의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예수님의  순종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땅에 오셔서 사역의 목적을 일관되게 말씀하고 계심을 쉽게 발견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누가복음 5 12-26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치심 가운데 목적을 분명히 하시고, 그에 따른 말과 행동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십니다. 나병은 당시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힘든 질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격리시켜야 했고, ‘나는 부정하다 주위에 알리며 다녀야 하는 참으로 비참한 질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질병을 예수님께서 깨끗함을 받으라라는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16) 성경은 말합니다. 늦게 사람들은 실망해서 돌아 갔는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중풍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병자의 친구들이 지붕을 뜯은 , 예수님 앞에 병자를 내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깨끗함을 받으라또는 일어나 걸으라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꼬투리를 잡으려고 보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예수님의 선포에 대해 이것은 신성모독 죄에 해당한다고 그들은 분노했습니다(21).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의도된 선포였습니다. 주위에 몰려든 많은 병자들, 보호자들과 구경꾼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리려는 선포였습니다. 그것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말씀이었습니다(24).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의 언행을 보면서 문제에 대해 깊은 묵상이 없고 회개와 믿음이 없다면 이제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가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단지 종합병원 사역이나 푸드뱅크 사역을 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역 뒤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죄로 지옥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죄에서 용서함 받고 천국갈 있는 유일한 길을 알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마음 가운데 흐르는 예수님의 은혜는 허물과 죄로 죽을 밖에 없는 저를 구원해 주셨다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없는 사실과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깊이 깊이 알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322(10/24/20) “껍질벗기(molting)”

robster

피터 스카지로(Peter Scarzzero)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Emotionally Healthy Chruch)’ 마지막 장에서 바닷가재(robster)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다가 왔습니다. 바닷가재는 5년간 성장기를 거치면서 무려 25번의 껍질벗기를 하며, 이후에도 매년 번씩 껍질을 벗는다고 합니다. 껍질을 벗는 것은 보통 15분정도 걸리며 성가신 과정입니다. 새로운 외피는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단단한 외피를 가질 때까지 여러 주를 숨어서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호기심이 생겨 유튜브에서 여러 가재의 껍질 벗는 과정을 직접 찾아 보았습니다. 힘들게 껍질을 벗자마자 가재들이 민첩하게 몸을 숨기는 모습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배울 있었던 것은 껍질 벗는 과정이 성가시고 위험에 노출되는 과정이지만 성장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크리스챤도 비슷한 성장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순간 껍데기와 같은 과거의 자신을 벗어 버리게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을 입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여전히 성숙과 성장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남아 있는 각자마다의 죄성의 껍질을 언제든지 벗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죄성의 껍질을 벗는 것이 창피할 수도, 힘들 수도,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중에 여전히 나를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안에 있어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제 유일한 나의 방패, 산성, 피난처, 요새, 그리고 반석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약속은 모든 믿는 자에게 있기 때문에 안심하게 됩니다.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나의 껍질벗기를 멈추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입으라

#321(10/17/20) “차콜 그릴(Charcoal gr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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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 댁에 초대를 받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차콜 그릴(Charcoal grill) 양념 고기를 구워 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를 먹으면서 차콜 그릴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생활하면서 직접 차콜 그릴에 불을 피워 사용해 적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보통 성도님들이 주셔서 기회가 없었고, 그릴을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 물어보고 여러 정보를 얻은 , 그릴을 하나 장만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중고 물품을 파는 페이스북(Facebook)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  며칠 검색하다가 적당한 그릴이 나와서 판매자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다음 오후 3시경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모든 약속이 되었고 당일에 주소를 물어 보았는 답이 없었습니다. 조금있다가 다시 물어 보니 팔렸다고 답이 왔습니다. 실망과 아쉬움이 그리고 조금 있다가 화가 났습니다. 먼저 오는 사람이 있었다면 빨리 수도 있었는데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다가  갑자기 팔렸다니그런데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 때엔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물건을 산다고 했다가 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사람도 그랬거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평생 거짓말 번도 했다 사람은 거짓말 왕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거짓말을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항상 합리화 시키면서 살자는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의 유혹에 넘어가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거짓말과 변덕을 먹듯이 부리면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길 있습니다. 불신이 생기고, 화가 나고, 다툼이 생기며, 그리고 폭력도 발생할 있습니다. 그리고 불신이 쌓이고 억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걷잡을 수없이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관계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믿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때도 있지만, 손해에 비해 얻는 것이 많습니다. 신뢰를 얻고, 사람을 얻고, 인정을 받으며, 그리고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있습니다.

이런 삶을 추구해야 할까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지도 변덕도 부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23:19). 그래서 자녀들도 거짓말하지 않고 변덕도 부리지 않으시길 원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말이죠. 내가 온전하고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고 거룩하라고 언제나 요구하십니다. 중에 하나가 정직입니다. 정직하게 살아서 힘든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서 그리고 되는 길이라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서 멋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변덕을 부리지도 아니하신다. 어찌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아니하시랴? 어찌 약속하신 것을 이루지 아니하시랴?”

#320(10/10/20) “기도하며 깨어있으라”

pray

요즘 월요일마다 초등학교에서 도서관 책을 대여 반납하는 일을 도와 주고 있습니다. 도서관 직원인 머라(Maura) 이번엔 가을을 확실히 느낄 있다고 합니다. 울긋불긋한 낙엽과 가을 공기가 원인인 같습니다. 이처럼 자연을 보면서 그리고 느끼면서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1 29-36절에서 무화과와 모든 나무를 보라 하셨습니다. 무화과 나무에서 잎이 나오면 여름이 가까운 알게 됨을 말하셨습니다. 자연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듯이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는 계절도 가까워옴을 반드시 체감할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임할 징조를 주목하라고 하십니다(31). 그리고 예수님은 약속한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심을 강조하셨습니다(33). 그래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가지를 제시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십니다(34).

 운전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운전 방어 운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에 달린 미러를 뿐더러 머리도 돌려서 주위에 차량을 항상 조심해서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방심하면 사각지대에서 불쑥 튀어 나오는 다른 차량과 사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방심하면 하나님을 떠나 표류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 방탕함, 취함,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질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34).

둘째, 너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36)

한국에서는 음주 단속을 위해 연말연시에 불시검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번은 교회 사역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번이나 검문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 이름이 적힌 승합차를 몰고 가는데도 말이죠. 물론 저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아서 당당하게 음주 측정기를 훅하고 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다니는 모양만 내는 사람이든 신실한 마음으로 다니든 불시에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우리는 장차 서게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앞에 서게 될지 쯤은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당당하게 그리스도 앞에 서길 원한다면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기도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떠한 말세의 시련도 당당히 이겨내고 우리의 어깨를 토닥이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소망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예수여 다시 오소서!

(누가복음21: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19(10/03/20) “주를 더욱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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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가정, 교회 그리고 직장에서 이런 저런 인간 관계의 파열음으로 소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 관계의 고통의 원인 중의 하나는 자기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자기 사랑말이죠. 물론 그런 사랑을 내가 하거나 다른 사람이 하거나 또는 그럴 관계의 여러 문제에 다다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쓰레기를 버려도 남의 담벼락에 버리고, 자녀들이 시끄럽게 해도 방치하고, 집에 소음이 정도로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경찰을 부르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텍사스에서 이웃집에서 주말 저녁마다 스피커를 크게 틀어 놓아서 경찰이 여러 출동해도 해결이 되는 것을 적이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 1-9절까지보면 말세에 펼쳐질 고통스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열됩니다. 예를 들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않고,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모함하고, 절제하지 목하고, 사납고, 선한 것을 싫어하고, 배신하고, 조급하고, 자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사랑하고, 경건한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등입니다.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없는지 살펴 보면 좋을 같습니다.

이렇게 나열된 말세의 죄성 들의 중심에는 자기 사랑 있습니다. 이기적인 자기 사랑은 다른 모든 죄성들을 양산하는 근원처럼 보입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면 이웃 또는 부모와의 관계가 깨지고, 자신만 너무 소중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적대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수단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에게서 돌아 서라’(5) 명령합니다. 함께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관계의 문제로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자신을 제외한 다른 대상과 환경에서 먼저 찾는 것은 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만일 자기 사랑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세가 되면 ,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자기를 사랑하는 양상이 심각해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세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원인을 항상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면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없습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항상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없다 보니 항상 이웃에 대해 공격적이고 자신이 피해자라며 합리화 시키고 정당화 시킵니다. 주님! 자신을 주님보다 사랑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께서 만든 존재로서 자신을 먼저 보게 하시고, 가운데 주님의 마음으로 자신을 긍휼히 여기며 살게 하소서. 나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서 항상 인정하며 겸손하게 살게 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318(09/26/20) “가치 있는 불편함”

asphalt

현재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에 아스팔트 포장 공사가 이번 주에 마무리 됐습니다. 단지를 3 구역으로 나눠서 순차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눈과 그리고 여러 차량 등의 통행으로 인해 갈라지고 패이고 페인트가 벗겨진 옛날 아스팔트를 걷어 내고 것으로 깨끗하게 단장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도로에 구멍이 하나 있어서 보기에 좋았는데 아주 말끔해 졌습니다. 그러나 아스팔트 공사를 하는 3 동안은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첫번째로 차를 앞에 대지 못하고 정해진 곳이나 멀리 떨어진 장소에 주차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곳까지 걸어 다니는 불편함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아스팔트 공사를 하는 중장비 소리가 소음을 일으켰습니다. 소음과 더불어 먼지와 냄새도 났습니다. 그런 것들을 견뎌야 하는 불편도 있었습니다. 이런 불편함이 지난 , 아스팔트로 단장된 도로와 앞은 너무나 좋아졌습니다. 주차 선까지 새로 선명하게 그려진 동네를 보니 동네가 달라 보이고 가치 있어 보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을만한 가치가 있는 불편함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항상 만사형통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이지 고난이 사람을 가면서 피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으로 풍성하고 진정성있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면 여러 관계에서 불편한 상황이 벌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직 미숙한 인격, 마음, 감정으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신 후에 불편함의 연속이었던 싶습니다.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엄청난 영적 체험을 그였습니다. 하지만 때부터 그의 삶은 이래저래 불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그의 회심을 의심받았습니다. 함께 했던 율법주의자들로부터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도 여러모로 그의 사역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다혈질에 같은 성격은 대제사장에게 욕설을 하고, 동역자와 대판장면까지 벌어졌습니다. 여전한 그의 미성숙한 감정처리와 관계에서 불신과 배척은 영적으로 매우 불편했을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이 대단한 것은 모든 자신의 한계와 상황에 대해 솔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히려 기도하며 겸손히 극복을 위한 영적 몸부림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발견할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가장 가치 있는 하늘 영광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래의 하늘 영광만 구할 오늘의 불편함이 가치 있게 됨을 믿습니다.

(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없도다

#317(09/19/20) “하늘 복”

heavenlypeace

많은 사람들이 찾고 구합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종교가 기독교든 아니든 상관이 없는 같습니다. 병든 것보다 건강한 , 가족이 되는 것보다 되는 , 없이 사는 것보다 여유있게 사는 것을 싫어할 분은 없죠. 이러한 소위 복된 삶에 대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5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설교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지금도 신유집회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몰려 듭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복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고, 낫고, 잘되는 무엇, 그러니까 현재 세상에서 누구나 바라는 복이 아닌 같습니다. 왜냐하면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내적인 축복이며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때론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부족해 보여도 천국에서 복된 삶을 바라보는 자세요, 인격이요, 성품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품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께서 주셔야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품들은 험한 세상에서 그렇게 좋아 보이지만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 온유한 , 의에 주린 , 긍휼히 여기는 , 마음이 청결한 , 화평케 하는 , 그리고 의를 위해 핍박 받는 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유약해 보이고, 이상주의자처럼 보일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 받는다 강조하셨습니다. 그러셨을까요? 의미를 곱씹어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약하고 공허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낮아진 겸손한 마음입니다. 둘째, 애통한다는 것은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해서 심히 슬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고 통회하는 마음입니다. 셋째, 온유하다는 것은 유약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콘트롤할 있는 파워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 하시는 것을 멀리하고, 원하시는 것을 항상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다섯째, 긍휼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여섯째,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정결한 제사 제물처럼 마음의 죄가 용서받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일곱째, 화평케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킨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덟째, 의를 위해 핍박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세상과의 불가피한 충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인격으로 빚어진 사람이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요, 하늘 받기에 충분한 인생입니다. 보이지 않는 복이 진짜 축복이요 보이는 복은 덤으로 받는 것들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