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에 새 아스팔트 포장 공사가 이번 주에 마무리 됐습니다. 단지를 3개 구역으로 나눠서 순차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눈과 비 그리고 여러 차량 등의 통행으로 인해 갈라지고 패이고 페인트가 벗겨진 옛날 아스팔트를 걷어 내고 새 것으로 깨끗하게 단장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집 앞 도로에 구멍이 하나 있어서 보기에 안 좋았는데 아주 말끔해 졌습니다. 그러나 아스팔트 공사를 하는 3일 동안은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첫번째로 차를 집 앞에 대지 못하고 정해진 곳이나 멀리 떨어진 장소에 주차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내 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곳까지 걸어 다니는 불편함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아스팔트 공사를 하는 중장비 소리가 소음을 일으켰습니다. 소음과 더불어 먼지와 냄새도 났습니다. 그런 것들을 견뎌야 하는 불편도 있었습니다. 이런 불편함이 지난 후, 새 아스팔트로 단장된 도로와 집 앞은 너무나 좋아졌습니다. 주차 선까지 새로 선명하게 그려진 동네를 보니 동네가 달라 보이고 한 층 더 가치 있어 보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을만한 가치가 있는 불편함입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항상 만사형통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이지 고난이 사람을 봐 가면서 피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으로 풍성하고 진정성있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면 여러 관계에서 불편한 상황이 벌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직 미숙한 인격, 마음, 감정으로 인해 불편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신 후에 불편함의 연속이었던 듯 싶습니다. 다메섹(다마스커스)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엄청난 영적 체험을 한 그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그의 삶은 이래저래 불편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그의 회심을 의심받았습니다.
함께 했던 율법주의자들로부터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도 여러모로 그의 사역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다혈질에 불 같은 성격은 대제사장에게 욕설을 하고, 동역자와 대판장면까지 벌어졌습니다. 여전한 그의 미성숙한 감정처리와 관계에서 불신과 배척은 영적으로 매우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이 대단한 것은 그 모든 자신의 한계와 상황에 대해 솔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히려 기도하며 겸손히 극복을 위한 영적 몸부림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러한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가장 가치 있는 하늘 영광을 바라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래의 하늘 영광만 구할 때 오늘의 불편함이 가치 있게 됨을 믿습니다.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