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07/24/21) “위에서 보면”

highaltitudeladder

초등학생 서머스쿨이 시작되어서 스쿨버스로 학생들을 학교와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킨더(Kindergarten) 아이들이 10명을 포함해 40 가까이 타서 정신이 없습니다. 자기 가방이나 런치박스를 놓고 내리는 아이들까지 챙겨 줘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좁은 길도 운행을 해야 되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좁은 길을 가다가 반쯤 막아 서있는 고가사다리차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운전석에서 올려다 보니 빌딩 유리작업 중인 했습니다. 반대편에서 오는 일반 승용차도 돌아 갑니다. 갑자기 아득해졌습니다. 앞으로 전진할 수도 없고, 후진하기도 용이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클락션을 빵빵 울려서 사다리 차를 빼달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위에 있던 작업자가 손짓을 합니다. 가만히 보니 지나가라는 손짓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이 너무 좁은데이러다 버스에 기스라도 나면 사고처리해야 되는데…”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데 있다고 저렇게 손짓을 하니 가볼까?”하고 말이죠. 어떻게 했을까요? 손짓하는 작업자의 말을 믿고 아주 천천히 38피트되는 스쿨버스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왼쪽에 고가사다리차의 튀어나온 부분과 오른쪽의 교통표지판을 건드리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오른쪽 대각선방향으로 나가서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조심해서 돌아갔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우회해서 빠져 나왔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와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위에서 봤을 지나갈 만하니까 손짓을 했었군하고 말이죠.


 우리의 삶도 그럴 때가 있는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진퇴 양난의 상황, ,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누구도 나를 도울 수도 없으며, 내가 해야 되는 상황 말이죠. 이럴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처럼 하늘을 바라보아야 믿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손짓과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눈으로는 안될 같지만 하나님께서 하라시면, 가라시면, 있으라 하시면, 그리고 돌아 가라 하시면 바로 길이 갈만한 길이라는 믿음 말이죠. 길을 가는 것이 긴장이 되고, 두려워도 천천히 묵묵히 가다 보면 어느새 터널을 빠져 나와 안도의 한숨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아브라함도, 이삭도, 요셉도, 다윗도, 사도 바울도 모두 그러한 터널들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손짓을 따라 갔더니 아들의 죽음이 앞에 있고, 주위의 질투로 옮겨 다니고, 모함을 당하고, 도망자가 되고, 감옥에 갇혔으나 결국 모두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가 되었음을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손짓을 신뢰하고 묵묵히 걸어 나가는 믿음의 여정이 모두 되시길 축복하고 기도드립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55(07/17/21) “백부장의 믿음”

romanofficerfaith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적다고 책망하시고, 어떤 사람의 믿음은 좋다고 칭찬하시는 것을 성경에서 발견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먹을 것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들과 환경에 두려워 떠는 자들을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면서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믿음이 크게 인정받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람은 유대인도 아닌 이방 사람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어떠하였길래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는지는 가지로 생각해 있습니다.


첫째, 백부장은 겸손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 가셨을 , 백부장이 간청합니다. “ 하인을 고쳐 주소서!”(6)하고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주여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8절상)하며 예수님의 걸음을 만류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겸손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당시 로마병사 100명을 거느린 군대장교로서 거만할 수도 있음에도 예수님을 극진히 높이고 자신을 지극히 낮추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을 좌지우지 하려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말이죠. 실재로 임재하시는 창조주되시고 구원자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겸손한 말과 자세와 행동을 백부장을 통해서 배울 있습니다.


둘째, 백부장은 말씀만 의지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겸손한 백부장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8절하) 백부장 자신도 부하를 명령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는데, 예수님께서도 번거롭게 오실 필요없이 말씀 마디면 충분하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건강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믿음 생활에도 본이 되는 자세입니다. “주님, 말씀만 하시옵소서,” “말씀 그대로 믿습니다,” “말씀 그대로 하겠습니다등과 같은 믿음의 자세를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배울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삶의 기본적인 마음 자세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말씀에서 벗어난 생각은 뿐입니다.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아도 겸손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나갈 몸과 마음과 영이 아픈 자들을 단번에 일으키는 능력의 말씀임을 체험하게 믿습니다. 그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고 오늘 날도 유효한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354(07/03/21) “붕괴”

collapse

지난 6 24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에 있는 서프사이드 타운의 12 아파트의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3 현재 24명의 사망자가 확인되었고 124명이 실종상태입니다. 소방 구조대가 철야 수색작업을 하고 있으나 날씨와 추가 붕괴 위험 등으로 구조 작업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사고 구조를 위한 72시간의 골든 타임이 지나면서 생존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붕괴 사전적인 의미는 무너지고 부서진다입니다. 그런데 붕괴 멀쩡한 건축물이 어느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질만한 이유가 안팎으로 있을 일어나는 것이죠. 9.11때처럼 외부 공격에 의해 빌딩이 무너질 수도 있고, 아파트처럼 내부적인 결함으로 인해 무너질 있습니다. 이미 3 전에 구조적 결함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2018 10월의 안전 진단 보고서에 수영장 아래 콘크리트 판과 1 주차장 기둥과 벽에 균열과 깨짐이 있는 중대한 구조적인 손상을 발견했다 합니다. 그리고 철근이 노출되고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간 사진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또한 창문과 발코니 문틈을 통해 물이 샌다는 주민들의 불만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서프사이드 타운 일대는 모래와 진흙으로 구성된 사주섬(barrier island) 세워졌으며, 건물을 올리기엔 불안정한 장소라고 NBC 방송에서 밝혔습니다. 아파트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와 아파트를 받치고 있는 지반의 취약성이 함께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아파트를 보수하려는 싯점에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붕괴가 일어나면 이제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직장도 자칫하면 무너질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멀쩡한 개인, 가정, 직장, 그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너질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고, 영적으로 가정, 직장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관계에서 불안정해지고, 균열이 생기고, 깨어질 있습니다. 세상도 무너지는 싯점이 가까워 올수록 점점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람들이 멀리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균열이 생기고 깨어집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생각에 끌려서 탐욕, 정욕, 야욕에 빠져 살아갈 세상 날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자신과 우리 주위를 돌아 보면 좋을 같습니다. 전에 비해 하나님과의 사랑이 뜨거워 지고 있는지 또는 냉랭해 지고 있는지 말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그리고 사회가 그러하다면 이미 붕괴의 과정에 있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너지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영광스런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날은 돌이킬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가장 친밀함을 유지하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날을 소망하며 오늘의 무너져 가는 세태에 흔들리지 않고 한걸음씩 믿음으로 걸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353(06/26/21) “엄지 척”

wavinghand

지난 화요일에 저는 워싱턴D.C. 전도모임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지방회에서 총무로 수고하시는 김국민 목사님은 년동안 D.C. 링컨 기념관 앞에서 전도활동을 오고 있습니다. 사모님과 명의 사람이 더해져서 주일에 번씩 꾸준히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전도모임에 지방회 임원들과 관심있는 목사님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링컨 기념관 앞에서 모였습니다.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목사님은 기타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Jesus loves you, God bless you!’ 그리고 능숙한 기타 솜씨로 반주하면서 찬송가 위주로 정도를 영어로 불렀습니다. 거의 없이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함께 따라 불렀습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손을 흔들기도 하고 어떤 분은 엄지 척을 하고 지나갔습니다. 비가 좋지 않은 날씨에 기념관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기분이 가라 앉을 있는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지나 가면서 손을 들어 엄지 척을 합니다. 분이 지나가면서는 손을 흔들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어떤 백발의 인상 좋은 할머니는 감사하다며 찬송가를 함께 서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순간 마음이 뿌듯했고 여기 오길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링컨 기념관 앞에서 처음으로 참여한 전도모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같습니다.


 우리는 점점 복음전하기가 하늘의 먹구름처럼 암울하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거리에서 찬양을 부르고 전도지를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보여 엄지 척은 감사와 격려를 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것이 엄지 같은 자세입니다. 관계전도도 필요하고 이러한 거리 전도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로 격려하고, 감사해 하고, 함께 찬양을 부르며, 흐믓한 미소를 지어주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이미 함께 전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땅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말을 듣고 뜻을 행하는 사람들을 형제와 자매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신 구원의 문을 계속 알리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없는 엄지 하고 계시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서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352(06/19/21) “978,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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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네시주 네쉬빌에서 열린 남침례교회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2만명이 넘는 대의원들이 참석해서 모임 장소도 넓은 뮤직시티센터(Music City Center) 변경됐습니다. 대의원 외에도 자녀들과 함께 가족이 경우도 있어서 참여 인원은 훨씬 많았던 같습니다. 특히 이번 총회에 많이 모인 것은 총회장 선거와 함께 여러 중요 안건들이 처리되어야 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한인총회에 참석하다가 미국남침례교회 총회에 것은 채플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군에서 채플린 사역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일년에 차례 NAMB(북미선교부)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최하는 모임이 4번이 있는데 중의 하나가 이번 총회였습니다. 아침 7 30분에 시작하는 채플린 모임에 참석하는 30 정도 늦었습니다. 총회와 NAMB 등록하는 절차가 있었고, 채플린 모임은 인근 호텔에서 있었는데 정확한 장소를 몰라서 헤매다가 늦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여명의 채플린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병원, 교도소, 육군, 공군, 해군, 해병대, 해안경비대, 그리고 재난구조대 등에서 활동하는 채플린 사역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한창 프리젠테이션이 진행하는 가운데 ‘978,502’라는 숫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숫자는 지난 십년 동안에 채플린들이 복음을 제시한 숫자였습니다. 이제 채플린 사역을 시작하는 새내기인 저에게 의미 있는 숫자였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지를 제시하는 숫자였습니다. 남침례교회에서 파송된 많은 채플린들이 각자의 사역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떤 직업이 아닌 복음의 사역자로서 충성스런 모습을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재난구조 채플린 사역자인 Jim 자신이 나이가 들어서 자원했다고 합니다. 재난이 일어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고 그리고 그곳에서 성경을 나눠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역을 한다고 간증했습니다.


이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복음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NAMB 함께 사역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총회의 발견한 구호는 ‘Together On Mission’이었습니다. 함께하는 선교를 하자는 구호였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하는 선교를 의미하는 같았습니다. 우리 각자는 주님의 일을 맡은 사역자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복음을 제시할 사명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각자의 교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커뮤니티에서, 가정에서 함께 선교하고 함께 복음 제시하고, 함께 서로 도우며 주님의 뜻을 이뤄가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딤전2:3-4)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51(06/12/21) “표현의 자유”

tannrcross

버지니아 주에 있는 라우든 카운티의 체육교사 태너 크로스씨가 얼마 전에 정직을 당했습니다. 정직을 당한 이유는 카운티 교육청의 성소수자에 대한 정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당 교육청은 학생들이 느끼는 정체성대로 이름이나 인칭 대명사를 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크로스씨는 남자에서 여자로 전환한 트랜스젠더 학생을 여자로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정직을 당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박탈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크로스씨는 교육청을 상대로 복직소송을 진행했고 최근에 승소했습니다. 판결을 판사는 모든 이슈에 대해 교사라는 이유로 침묵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반하기에 위헌적이라고 했습니다. 표현의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생각, 의견, 주장 따위를 아무런 억압 없이 외부에 나타낼 있는 자유. 언론·출판·통신 따위의 자유가 이에 해당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언어 폭력까지 표현의 자유로 묶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특별히 종교인 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자유까지 제한하고 이로 인해 사회 활동까지 박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의 자유가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침해 받고 있는 현실이고 다른 역차별을 야기하는 사회상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버지니아 근방에서 다섯 건의 유사 소송이 있다고 합니다. 크로스씨는 법원에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남성을 여성으로 부르는 행위는 아이를 학대하고 거짓말하는 것과 똑같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를 짓는 것이다. 신은 남자와 여자, 성을 창조했으며, 신은 인간에게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을 얘기하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날의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적전쟁의 가운데 있음을 느낍니다. 우리가 동안 믿어왔던 성경의 진리에 대한 공격이 점점 거세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세상의 논리와 그들의 믿음에 대처 해야 합니다. 그들이 소위 인권’ ‘평등’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자신들의 믿음을 강요할 나의 믿음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사는 도시와 커뮤니티가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처럼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충돌한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 같은 골리앗을 대적한 다윗처럼, 세상 같은 바벨론 앞에서 말씀을 선택한 다니엘과 친구처럼, 세상 같은 로마제국의 핍박에 복음을 들고 나간 바울처럼 우리가 순종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세상의 모든 철학과 이론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실 것입니다.(고후10:3-6)  최후 승리를 주실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350(06/05/21) “스마트폰”

smartphone

요즘 드라마나 사건 사고관련 뉴스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중에 하나가 스마트폰입니다. 드라마에서는 배신과 협박을 위한 수단으로, 사건과 사고관련 뉴스에서는 증거물로 빠짐없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만큼 사람의 모든 정보가 스마트폰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보를 지운다고 해도 다시 살려내는 기술도 있으니 비밀이 없습니다. 이처럼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들의 속에 깊숙이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뗄래야 없는 스마트폰이 일주일 없을 일어나는 시나리오 12가지를 ITWorld라는 인터넷 신문의 기사에서 있었습니다. 중에 가지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누구와도 연락할 없습니다. 왜냐하면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기억력은 점점 좋아질 있다고 합니다. 둘째, 식사를 빨리 하게 됩니다. 먹음직스런 음식을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셋째, 잠의 질이 좋아집니다. 넷째,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음악도 들을 없고, 뉴스나 이메일도 체크할 없어서 가벼운 권씩 들고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누군가의 삶을 강제로 엿보지 않아도 됩니다. 단체 채팅방이나 페이스북 같은 SNS활동을 하다보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강제로 다른 사람의 사진, , 그리고 일상을 엿봐야 합니다. 그리고 댓글을 달까 말까하는 고민도 생깁니다.

이처럼 개개인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는 스마트폰이 사라지면 불편한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개발되어지고 좋아지는 부분도 생깁니다. 하지만 사라지는 일이 갑자기 생길 같지는 않고 스마트 폰에 대한 의존은 많아질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성향이 데이터에 기억되어지고 기업들은 수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이러한 스마트폰을 보면서 우리는 최고로 스마트한 분이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나의 동의와 상관없이 모든 나의 말과 행동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저장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니 정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보를 가지고 하나님은 사망과 영생, 지옥과 천국, 벌과 상을 주시는데 가감없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스마트하신 하나님 앞에서 말과 행동을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추구해야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스마트하신 하나님 앞에서 스마트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3:17) “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49(05/29/21) “천사”

survivalbag

지난 주에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DC 홈리스 사역을 다녀왔습니다. 저녁에 찾아 유니언 스테이션에 택시나 우버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사이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홈리스들이 보입니다. 전에는 사람도 보이지 않더니 번에는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동안 보이지 않았던 백인 아줌마도 다시 만날 있었습니다. 준비한 서바이벌 백을 나눠주고 말합니다. “God bless you! Jesus loves you!” 백을 받아 얼굴에 미소가 흐르면서 답합니다. “Thank you! God bless you!” 하지만 가져간 서바이벌 백의 정도가 남았습니다. 그것들을 나눠주기 위해 근처에 있는 쉘터에 갔습니다. 쉘터 밖에도 적지 않은 홈리스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정목사님이 미리 준비한 맥도날드 기프트카드를 챙겨 주시면서 서바이벌 백이 없을 경우에 대신 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만난 명의 사람에게 백을 나눠주자 사람이 뭐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 알아 들어서 뭐라고 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 You are an angel!”하는 것입니다. 순간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We are like you!” 우리에게 고마움의 표현을 천사라고 했지만 우리도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는 영적으로 세상에서 홈리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우리의 영원한 집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있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여튼 홈리스가 우리를 향해 천사라고 해서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사역 현장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천사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행하는 자로 나타납니다.마리아에게, 요셉에게, 사도 요한에게,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전했던 것도 천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재앙과 심판을 때도 천사들이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고, 때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이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고 있습니다. 천사와 사람이 똑같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천사도 흠모할 만한 삶을 사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면서 말씀을 전하고 또한 말씀대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영적으로 천사같고, 천사도 흠모할만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도 균형있게 전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입은 천사 같은 삶을 산다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천사 같은 삶을 사모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1: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있는 가브리엘이라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348(05/22/21) “함께”

crutch

현재 미국에서 백신 접종을 사람이 계속 늘어 나고 있습니다. 이에 맞춰서 정부 기관 관공서 그리고 학교 비즈니스 하는 사업장들의 규제가 완화되고 있습니다. 백신을 모두 접종한 사람들은 실내와 실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물론 대규모 행사 집회나 경기장 그리고 학교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됩니다. 하지만 백신을 맞은 사람들 명이서 마스크를 벗고 만나는 것은 이제 자유스럽게 되었습니다. 점점 팬데믹 이전의 상태로 접근해 가는 같아서 좋은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예비군 부대도 오픈을 해서 모든 부대원들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입니다. 그리고 그날 중요 행사인 체력검정을 위한 연습을 했습니다. 단거리 달리기를 위해 출발선에서 엎드린 상태에서 갑자기 일어나서 뛰어 나갔는데 장딴지를 누가 공으로 하고 때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누가 공을 던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장딴지에 경련이 일어난 상황이었습니다.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30 동안 스트레칭과 마사지 그리고 물을 마셔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부대에서 군인병원 응급실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메릴랜드에 있는 월터 리드(Walter Reed) 군인병원이었습니다. 굉장히 규모가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COVID-19때문에 갔었다는 군병원이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군인 신분증 검사를 합니다. 처음이라 주차장을 찾는 애를 먹었습니다. 간신히 주차장을 찾아서 내렸는데 채플린 선임인 구딘(Goodin) 미리 있었습니다. 응급실 접수하는 곳까지 함께 가주고, 차례를 기다리면서 벗이 되어 주었습니다. 1시간 정도 검사와 진단 그리고 처방을 받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방받은 약을 타러 약국도 함께 가고, 다시 주차장도 함께 돌아 갔습니다. 구딘한테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했습니다. 그러자 구딘이 말했습니다. “나중에 나도 이런 상황이면 도와달라 말이죠. 나는 그러겠다고 답해 주었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갑작스런 어려움이 찾아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일이 경련이 일어나는 것처럼 꼬이고 마음이 불편하거나 슬픈 날이 찾아 있습니다. 그럴 함께 기도해 주고,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함을 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함께 기도해 주고, 옆에 있어 사람이 있었다면 잊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믿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사했던 분들이 비슷한 일을 당한다면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모른 척하지 않고 분들과 함께 하면 참으로 좋을 같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면에서 항상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제까지요? 그렇습니다, ‘세상 끝날까지함께하십니다. 얼마나 든든한 약속의 말씀인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오늘도 위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347(05/08/21) “위드킬러(weed killer, 잡초제거제)”

weedkiller

쓰레기 버리러 가는데 집에 사는 방글라데시 사람인 모하메드를 만났습니다. 평소에도 필요할 때는 서로 일을 돕는 마음이 편한 사이입니다. 오늘도 나를 보자마자 잠깐 말할 것이 있다면서 나를 멈춰 세웠습니다. 우리 백야드와 프런트 야드에 잡초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야드에는 잡초가 거의 없는 이유가 위드킬러를 뿌려서라고 했습니다. 직접 위드킬러를 가지고 나와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도 위드킬러가 있습니다. 단지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서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위드킬러를 샀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야드에서 뛰노는 어린 강아지에게 좋지 않을 같아서 였습니다. 지금은 강아지가 컸고, 아무 것이나 먹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위드킬러를 프런트 야드와 야드에 뿌렸습니다. 신기하게도 잡초들이 시들시들 죽는 것을 확인할 있었습니다. 물론 잔디는 멀쩡하구요.


성경에서 잡초를 가라지 번역한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가라지가 있습니다. 가라지를 뿌린 것은 원수입니다. 알곡은 천국의 아들들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이들이 함께 자랍니다. 그렇다고 가라지를 뽑을 없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천국의 아들들이 다칠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 날에 가라지는 거두어서 불사르게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알곡은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한 천국에 있게 된다는 비유입니다. 비유를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에 위드킬러를 뿌리시는 듯한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잔디는 전혀 다치지 않고 잡초만 죽이는 위드킬러처럼 마지막 날에 거라지는 모두 제거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아들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닐게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비로소 모든 고난의 눈물을 씻김받는 날이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인내하게 됩니다. 비록 세상의 구조적인 악이 팽배하더라도, 마지막 , 심판의 날에 모든 것이 선악간에 결정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점점 죄를 죄라고 말할 없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끝까지 복스러운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13:40,43)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있는 자는 들으라